형식에 갇힌 영혼이 다시 숨 쉬는 법 : 톨스토이 《세 은둔자》가 남긴 화두
[마음의 지혜]형식에 갇힌 영혼이 다시 숨 쉬는 법 : 톨스토이 《세 은둔자》가 남긴 화두
들어가며
최근 톨스토이의 단편 《세 은둔자》를 영상으로 제작하며 깊은 묵상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 짧은 이야기는 우리가 믿음이라 부르는 것들이 과연 얼마나 '형식'에 치우쳐 있는지, 그리고 그 형식을 걷어낸 자리에 남아야 할 '본질'이 무엇인지 서늘하게 묻습니다.
1. 율법의 박사인가, 사랑의 실천가인가
톨스토이의 단편 《세 은둔자》는 우리에게 서늘한 화두를 던집니다. 이야기 속 주교는 당대 최고의 학식과 권위를 가진 인물로, 기도를 모르는 섬에 은둔하며 도를 닦고 있는 어리숙한 노인자들을 가르치려 듭니다. 이는 마치 성경 속 바리새인이나 율법학자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 정교한 율법과 화려한 예식이라는 '형식'에 매몰되어, 그 안에 담겨야 할 하나님을 향한 순수한 경외감이라는 '내용'을 잊어버린 현대인의 초상이기도 합니다.
형식: 정확한 기도문, 정교한 율법, 화려한 예식.
내용: 그 안에 담긴 하나님을 향한 순수한 경외감과 사랑.
모세의 율법을 문자 그대로 지키면서도 정작 예수를 밀어냈던 이들처럼, 저도 혹시 '옳은 방식'을 고집하느라 '선한 마음'을 잃어가고 있지는 않는지, 정교한 율법과 화려한 예식이라는 '형식'에 마음이 쏠려, 그 안에 담겨야 할 순수한 경외감이라는 '본질'을 놓치고 사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되었습니.
2. 물 위를 달리는 순수함: 영적 삶의 정수
주교가 가르쳐준 기도문을 잊어버려 물 위를 달려오는 세 은둔자의 모습은 이 소설의 백미입니다. 그들은 '어떻게 기도하는가'라는 방법론에 갇히지 않았습니다.
"당신들도 셋, 우리도 셋,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단순하다 못해 투박한 이 기도에는 어떠한 가식도 없습니다. 톨스토이는 여기서 **'영적인 삶'**의 비결을 보여줍니다. 복잡한 신학 이론보다 강한 것은, 어린아이 같은 순수함으로 신 앞에 서는 태도라는 것을 바다 위를 달리는 이들의 발걸음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언변도 화려하지 않고 다른 이의 가르침에도 거부함이 없는 겸손함, 그리고 무엇보다 주님 앞에서 진정성과 순수함으로 나아갈 때 신앙인으로서 영적 진보가 있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습니다.
3. 진정한 위대함은 '무릎 꿇음'에 있다
이 소설에서 제게 가장 감동적인 대목은 은둔자들의 기적 다음으로 그 기적을 목격한 주교의 태도였습니다. 자신의 학식과 권위가 은둔자들의 순수한 믿음 앞에서 아무것도 아님을 깨닫는 순간, 그는 오만을 버리고 겸손히 머리를 숙입니다.
진정한 회개란 바로 이런 것입니다. 내가 가진 '지식'이 '진리'보다 앞설 수 없음을 인정하는 것, 그리고 나보다 낮은 곳에 있는 이에게서 신의 얼굴을 발견하는 겸손함이야말로 신앙인이 도달해야 할 가장 높은 단계입니다.
4. 거울 앞에 선 나의 고백: '도끼눈' 기도에 대하여
이 위대한 고전 앞에 제 삶을 비추어보니 부끄러운 민낯이 드러납니다. 저 또한 매일 의무적으로 기도문을 붙잡고 숙제하듯 기도를 해왔습니다. 정해진 분량을 채우지 못하면 찝찝하고, 다 하고 나면 숙제를 끝낸 듯 개운해하는 그런 '형식' 중심의 신앙생활 말입니다.
정작 방에서 기도를 하다가도 거실에서 저를 부르며 방해하는 남편에게 짜증이 나 '도끼눈'이 되는 저의 이중적인 모습. 거룩한 기도를 읊조리면서도 가장 가까운 이에게 줄 사랑 한 줌 품지 못했던 제 모습이 바로 은둔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치려 했던 오만한 주교의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마치며
형식이라는 껍데기를 하나씩 벗겨내고 나면, 그 자리엔 결국 '사랑'과 '현존'만이 남을 것입니다. 주교가 은둔자들의 발치에 엎드려 "당신들의 기도는 하늘에 닿았습니다"라고 고백했듯, 저도 이제 '숙제 같은 기도'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으려 합니다. 완벽한 기도문을 읊는 것보다, 기도를 방해하는 남편에게 따뜻한 미소를 먼저 건네는 것이 톨스토이가 말한 '지금 이 순간'의 위대함을 지키는 길임을 잊지 않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제 조용히 성체 앞에 앉아 예수님과 묵묵히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늘려보려 합니다. 마치 오랜 친구와 마주 앉아 특별한 말 없이도 서로의 마음을 읽는 것처럼 말이죠.
주교가 가르친 완벽한 기도문보다, 은둔자들의 잊어버린 기도가 왜 더 위대했을까요? 명화로 보는 톨스토이의 걸작, 《세 은둔자》 영상을 통해 그 전율의 순간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 [영상 바로가기] 기도문을 잊자, 기적이 시작되었다 🔗 [https://youtu.be/OlaXJKHzejA?si=zsovdx9JGZFANxx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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