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억의 상실감, 그리고 톨스토이가 남긴 2미터의 유언

 

[에세이] 7억의 상실감, 그리고 톨스토이가 남긴 2미터의 유언

레프 톨스토이의 단편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는 짧지만 잔인할 만큼 정확한 질문을 던집니다. "사람에게 정말 필요한 땅은 얼마나 될까?"

올해 초, 저는 이 질문을 책장이 아닌 삶의 한복판에서 마주해야 했습니다.

1. 멈출 수 없었던 파홈의 질주, 그리고 나의 질주

레프 톨스토이의 단편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는 인간의 실존을 뒤흔드는 서늘한 질문으로 시작합니다. 주인공 파홈은 "땅만 충분히 있다면 악마도 두렵지 않다"고 호언장담하며 소유의 확장을 시작합니다.

그의 여정 중 백미는 바슈키르인들과의 계약입니다. *'해가 지기 전까지 돌아오기만 하면, 당신이 발로 밟은 모든 땅을 주겠다'*는 제안. 파홈은 더 비옥한 땅, 더 넓은 목초지를 한 뼘이라도 더 넣기 위해 욕심껏 원을 그립니다. 다리는 후들거리고 심장은 터질 듯하지만, 눈앞의 비옥한 땅은 그를 결코 멈추게 하지 않았습니다.

이 소설은 단순히 탐욕에 대한 우화가 아닙니다. **'조금만 더'**라는 희망이 어떻게 인간을 파멸로 이끄는 레이스가 되는지를 보여주는 잔인한 보고서입니다.

2. 7억이라는 숫자가 할퀴고 간 자리

올 초, 저희 부부는 20년 간 소유했던 아파트를 매도했습니다. 당시로서는 최선의 선택이라 믿었으나, 불과 6개월 만에 7억이 올랐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내가 잘못 판단했다’는 자책, ‘조금만 더 버텼으면’이라는 후회, 그리고 나만 뒤처진 것 같은 불안감이 저를 잠식했습니다. 남편과 저에게 그 시간은 지독한 열병 같았습니다. 

그 숫자는 우리가 앞으로 하지 않아도 될 수많은 노동의 시간이었고, 미래와 노후생활에 대한 안전장치였으며, 가족의 더 나은 삶을 보장해 줄 '기회'였습니다. 그것을 한순간에 다 날려버렸다고 생각하니 도저히 살아갈 힘이 나질 않았습니다.

그 상실감은 파도처럼 밀려왔습니다. '그때 팔지 않았더라면' 하는 자책은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일상을 베어냈습니다. 남편과 저는 서로를 마주 보는 것조차 힘들었고, 숨을 쉴 때마다 가슴 한구석이 꽉 막힌 듯한 통증을 느꼈습니다.

그때 문득 깨달았습니다. 나는 지금 파홈처럼 달리고 있구나. 파홈은 벌판 위를 달렸지만, 나는 이미 과거가 되어버린 '매도 전의 시간' 속을 미친 듯이 질주하고 있었습니다. 이미 내 손을 떠난 땅을 마음속에서 한 바퀴라도 더 크게 돌려보려 애쓰며, 스스로를 고갈시키고 있었던 것입니다.

3. 2미터의 땅: 소유가 아닌 존재의 면적


소설의 끝에서 파홈은 결승점에 들어오자마자 피를 토하며 쓰러집니다. 그의 하인이 땅을 파고 그를 묻습니다.

"파홈이 차지한 땅은 머리 끝에서 발끝까지 겨우 6피트(약 2미터)였다."

이 문장은 제 가슴에 깊은 경종을 울렸습니다. 우리가 평생을 바쳐 쫓는 부동산의 평수와 통장의 잔고가 실은 우리를 담아낼 공간이 아님을 말해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죽음 앞에서 필요한 것은 2미터의 땅뿐이며, 화장이 보편화된 지금은 그조차도 필요 없습니다.

가장 고통스러웠던 지점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7억을 잃었다는 생각에 숨도 쉬지 못했던 그 시간 동안, 제 삶은 역설적으로 가장 '불안전(위험)'했습니다. 우리는 흔히 부동산을 '안전 자산'이라 부릅니다. 더 넓은 평수, 더 높은 매매가가 우리의 노후와 삶을 지켜줄 성벽이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그 성벽이 조금이라도 흔들리거나, 내가 남들보다 낮은 성벽을 가졌다고 느끼는 순간, 우리의 내면은 처참하게 붕괴됩니다. 7억이라는 숫자를 손에 쥐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당장 머물 집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혼은 길거리에 나앉은 듯 떨고 있었습니다.

톨스토이가 말하는 악마의 유혹은 멀리 있지 않았습니다. *"조금만 더 가졌더라면 네 삶이 더 가치 있었을 텐데"*라는 속삭임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7억이 더 있었다면 나는 더 행복했을텐데'라는 악마의 속삭임은 제 삶을 무너뜨리기 충분했습니다. 

4. 나를 위한 적용: 상실을 '통과'하는 법

톨스토이는 인간의 탐욕, 특히 땅과 소유에 대한 탐욕이 얼마나 집요한지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는 그 땅을 안정이라 부르고, 미래라 부르고, 성공이라 부릅니다. 결국 그 이름이 더 많이 가지지 못했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괴롭힙니다. 

이제 저는 톨스토이의 경고를 제 삶의 문법으로 다시 쓰려 합니다.

  • 숫자라는 악마의 속삭임 거부하기: "7억만 더 있었더라면"이라는 생각은 파홈을 달리게 했던 악마의 유혹과 같습니다. 그 유혹은 결코 만족을 모르며, 결국 '현재'라는 가장 귀한 땅을 황폐하게 만듭니다.

  • 마음의 '실거주 면적' 넓히기: 7억이 오른 아파트에 살지 못하게 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 아파트가 내 영혼의 크기를 결정하게 두지는 않겠습니다.

  • 이미 충분한 것들을 응시하기: 숨쉬기조차 힘들었던 시간을 지나, 남편과 다시 평온하게 대화할 수 있는 지금 이 순간. 이것이 진정으로 제가 소유한 비옥한 영토입니다.

결론: 삶은 소유가 아니라 '숨'입니다

마음이 소란하던 밤, 톨스토이의 문장들은 거울이 되어 나를 비췄습니다. 파홈의 비극은 땅을 얻지 못해서가 아니라, ‘더 많은 땅’을 얻기 위해 ‘오늘의 숨’을 포기한 데 있었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닫습니다. 나 역시 7억이라는 숫자에 휘둘려, 정작 내가 누려야 할 일상의 평온을 스스로 내던지고 있었습니다.

그때 톨스토이는 내게 낮은 목소리로 위로를 건네는 듯했습니다. **"인간은 자기 자신을 걱정함으로써 사는 것이 아니라, 사랑에 의해서 산다"**라고 말입니다. 7억이라는 숫자는 내 삶을 지탱하는 뼈대가 아닙니다. 지독한 상실감의 터널을 지날 때 내 곁을 지켜준 남편의 손, 그리고 무너진 마음을 다시 세우려 애쓴 시간들이야말로 진짜 내가 가꾸어야 할 '삶의 영토'였습니다.

이제는 떠나간 숫자를 향한 마음의 질주를 멈추기로 했습니다. 톨스토이의 경고를 등불 삼아, 나에게 정말 필요한 땅은 수억 원의 시세 차익이 아니라 어떤 흔들림 속에서도 평온을 되찾을 수 있는 **'지금 여기, 내 마음의 한 칸'**임을 가슴 깊이 새겨봅니다.


[유튜브 영상 링크 복사하기]

📺 함께 보면 좋은 영상: 문화챔피언 TV "부동산 비극, 그 날카로운 경고" :톨스토이의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

"우리가 쫓는 땅의 끝은 결국 어디일까요?" 평생 땅만 쫓던 남자의 충격적인 결말을 통해, 현대 부동산 시장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톨스토이가 던지는 날카로운 경고를 영상으로 확인해 보세요. https://youtu.be/eimkunnAjQE?si=4_A6YKroJhDKioCB

 

 

댓글

  1. 톨스토이 저도 무척 좋아하는 작가인데 또 이런 관점에서 적용하니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다시 한번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우리가 버려야할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합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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